나의 수필

두갈래의 사춘기

향기나는 삶 2008. 7. 1. 00:25

중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께서 병으로 갑자기 운명을 달리하셨다

손바닥만한 우리집을 새로 짓기 위해 구이저수지 밑에 있는 수월리 논을 파셨고

그 밑천을 바탕으로 집을 지으려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극구 만류하셨지만 손바닥만한 집에서 대가족이 기거하기가

불편하셨던 아버지는 집 건축을 강행하셨다.

그것이 화근이 되셨을까!

집을 잘못 지으면 사람을 죽을 수 있다는 말과 패가망신을 할수 있다는 것을 반영이라도 한 듯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경고처럼 할아버지는 꽃상여를 타고 오지 못할 저승길로  발길을 옮기셨다.

새벽이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시조를 조용히 따라 읊조리시고

유교적 소양을 갖추신 할아버지의 부재는 결국 아버지의 가정에서의 일탈로 이어졌다

동적골에 있는 술집에서 술과 향락생활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앙금이 생긴다는 것은 자고로

명약관화한 일이 되고야 말았다.

거의 매일 밤 부모님의 다툼으로 인해 편하게 잠을 청할 수없었고,나는 그 스트레스를 먹는 음식으로

풀어서 체중이 나날이 늘어만 갔다.

아버지의 기나긴 방황은 점집 아주머니 말씀처럼 8년이 되어야 모든 것이 끝난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대학교 3학년 때 종지부를 찍었다.

아버지께서 소 달구지를 과중하게 몰고 가시다가 고삐가 끊어져 엉덩이뼈가 끊어져 버렸고

4차례에 걸쳐 대수술을 거친후에 절룩거리시지는 장애를 얻어야만 했다.

태어나서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던 중학교 2학년 전까지는 산토끼와 발맞춰 살아가는 산동네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변화에 가슴 벅찬 설레임을 느끼고 풍부한 감성을 키워갔던 반면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를 만큼

암울한 생활의 연속으로 눈물의 감성을 얻었던 것 같다.

불행했던 부모님의 결혼생활 속에서 밤이면 혼자 다리에 앉아

눈물을 삼키고 삶의 고달픔을 스스로 달래야 했다.

서쪽새 우는 소리, 바람결에 대나무 부딪치는 소리, 시냇물흐르는

소리,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들은 밤의 슬픈 비가(悲歌)일뿐이었다

사람을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와 같이 했던 시절에

단란했던 행복이 있었던 것이리라.

부부싸움을 생각하면 괜히 공포스럽고 무섬증에 시달린다.

지금의 결혼 생활 속에서 될 수 있는 한 아이들에게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는 것도

그 당시에 겪었던 무섬증을 아이들에게 전가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사랑과 미움이라는 두 단어가 나의 가슴에 새겨진 것은 유년시절에 겪었던 행복했던 시절,

불행했던 시절에 겪었던 감성들이 뿌리깊게 자리잡았던 것이리라

그러나 사랑이 있어야 미움이 있고 미움도 사랑속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두 단어 속에 묶여진 융화된 미움과 사랑이란 단어를 배우려고 그런 시련도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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