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한번의 모험을 감행한 적이 있었다.
여행을 즐겨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이란 단어가 모험처럼 여기지 않을테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집을 떠나 여행을 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음속에 짓누르고 있던 번잡한 고뇌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곳,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는 수평선이 있는 곳...
내 상상속에 그린 바다는 바로 부산이었으며 야간 기차여행지로 적격이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결혼 안한 숙녀가 혼자 여행을 간다는 것은 무서움을 동반했다.
여행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필요했다.
중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여행 경험이 풍부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녀에게 내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 역시 부산이 볼거리도 있고 바다가 일품이며 가볼만하다고 나의 의견에 흔쾌히 수락을 했다.
야간 열차 11시 50분 열차를 타기로 했다.
시골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친구의 자췻방에 있다 1시간 30분 정도 먼저 역에 도착,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기차를 기다렸다.
마음이 들떠서 일까! 여행에 대한 기대심리일까!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여수로 향하는 기차의 레일을 밟는 소리가 간간히 소음으로 들려왔다.
약간의 과자,음료수..간식거리를 샀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야수의 눈빛을 밝히며 내가 타야할 기차가 고개를 흔들거리며 달려왔다.
거친 숨소리를 가라앉히며 기차가 멈췄다.
기차의 심장소리와 나의 심장소리가 같이 뛰었다.
기차에 올라타는 순간 열려진 문 사이로 초가을 바람이 내등을 떠밀었다.
토요일 오후여서인지 서울로 향하는 사람들이 좌석에 앉아서 졸고 있던 눈으로 타는 이들을 훔치고
다시 수면으로 들어갔다.
입석을 구입한 터라 비어진 자리에 몸을 기대었다가 앉을 주인이 오면 일어섰다.
창밖으로 거무스름한 도시의 불빛이 몇번 꺼졌다 켜졌다 반복했다.
전주역에서 부산으로 곧바로 가는 기차가 없었다.
그녀는 대전에서 부산행으로 갈아타야한다고 했다.
부산행 기차가 기다림 없이 몇 분 사이로 연결되어 있어서 힘들게 기다리는 노고를 덜 수있었다.
사람들의 부산 사투리를 들었을 때 비로소 여행이 실감이 났고 같은 작은 땅에서 서로 다른 억양이 있다는
것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새벽의 찬 공기를 가르며 달린 기차는 아침이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택시를 타고 용두산공원에 올랐다.
부산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도시 규모가 워낙커서 직할시 다운 면모가 확연히 들어났다.
짠 바다 냄새와 물고기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코끝에 앉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다운 향기가 났다
아침이라 운동하시는 몇몇 사람들의 발길만이 드문드문 공원을 채울뿐 넓은 공간은 서늘한 바람들이 지나갔다.
아침 배고픔을 빵으로 채웠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태종대를 향해 다시 택시를 탔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태종대를 향해 가는 숙녀들의 말투를 듣고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소리의 높낮이가 다른 낯선 여행자인 것을 ....
태종대에 도착했다.
파란 융단을 깐 것처럼 푸른 바다가 내 눈에 한폭의 사진이 되어 들어왔다.
전망대는 본래 자살 바위라 불리던 곳으로 한때 구명사를 세워 떨어지는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죽어간 고혼을 달래기도 했던 곳이라고 하였다.
모자상이 눈에 띄었다.
어머니가 따스하게 자식을 감싸안고 있는 조각상이었다.
세상을 비관하여 전망대에서 자살하는 이들에게 어머니의 진한 사랑을 느껴보고
삶의 희망을 가져 보라는 취지가 있다고 하였다.
바다 밑을 바라 보았다.
금방이라도 나를 삼킬 것 같은 파도가 철썩거리며 깎아놓은 절벽에 부딪쳤다.
낭떠러지 밑을 바라보니 어지럼증이 순간 일어났다.
이곳이 어떤이는 지친 삶을 접어버리는 생의 이별의 장소가 되었지만
난 이곳에서 새 삶을 설계하기 위한 장소로 왔기때문에
인생 걸어가는 길에도 이렇게 상반된 방향으로 인생이 전환 된다는 것이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했다.
신선 바위를 바라 보았다.
사실 편편한 바위에서 신선들이 노닐던 장소였다고 신선대라고 불리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선들은 그 곳에서 세상에 가장 고운 푸른 빛깔로 바다를 만들고, 뜨고 지는 해, 밤하늘의 별도,
바람도 만들어내면서 풍류를 즐겼기 때문에 신선바위라고 이름짓지 않았을까!
거친 파도와 바람은 신선 바위 앞에서 고분고분 무릎 꿇는 듯 잔잔해졌다.
바닷물을 만지기위해 등대 밑에 자갈 마당으로 조심 조심 내려왔다.
여러가지 색깔의 돌들이 파도에 씻겨 해안선에 곡선을 그리면서 형성되어 있었다.
옆의 절벽에서는 고기를 낚는 낚시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묘기를 부리며 고기를 잡고 있었다.
넓은 바다앞에 의연하게 섰다.
바다를 한 몸으로 힘껏 안았다.
바다가 바람을 타고 내 품으로 폭 안겼다.
밀려오는 파도에 손을 담그며 버려야 할 것들을 다 꺼내 바다에 내 놓았다.
파도가 내가 버린 것들을 다 가지고 저 멀리 도망을 갔다.
'내 인생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마음속에서 포효하듯 소리를 질렀다.
태종대를 구경하고 오후 2시경에 부산역에 도착해서 여행의 출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처음으로 경험했던 야간 기차여행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그날의 환희가 전율되어온다.
이 여행을 통해 삶 앞에 당당하게 맞설 수있었고 흔들거리던 마음들도 심지굳게 여밀 수 있었다.
그 후로 인생을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바로서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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