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단풍잎 닮은 아이

향기나는 삶 2008. 9. 8. 14:15

        
곱고 예쁜 단풍잎 닮은 여섯살 난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가 처음 우리집에 오게 된 계기는  내가 가르치는 병준이란 초등학교 5학년 오빠를

따라 온 것이 시초가 되었다. 

병준이를 내게 맡기면서 병준이 어머니를 만난적이 있었는데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버지께서 교통사고 후유증을 앓고 계셔서 간질 현상이 종종 나타나 직장을 퇴직하게 

되었으며  어쩌다 들어간 직장도 오래 다니지 못하는 형편이고 국가의 보조를 받고

있다고 딱한 사정을 털어 놓으셨다.

현재는 자신이 집안의 가장이 되어 살림을 도맡아야 할 처지라서 병준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여동생 뒷바라지를 다하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측은함을 감추지 못했다.

병준이네 집에 무슨일 있으면 토요일 일요일날 아이를 우리집에 데려다 놓아도 괜찮다고

말을 해 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하고 발길을 옮기셨다.

여름방학이 되었던 어느날, 병준이 옆에 파마머리에 살결이 하얗게 흰 여자아이가 꽃무늬 분홍색 치마를

입고 쑥스러운 듯  현관문 앞에서 망설이고 들어오지 않았다.

난 얼른 그 여자아이가 병준이 동생이란 것을 눈치 챘다.

" 어서들어와, 이름이 뭐니?"

" 다연이에요." 여자아이는 한손은 입에 물고 다른 한 손은 치마를 잡고 배배꼬고 있었다.

어찌나 이쁘던지 순간 손을 덥석 잡았다.

병준이는 산만한 덩치에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남성다운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어서

병준이 동생을 상상할 때 병준이와 닮았으면 여자다운 면모는 갖추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나름 생각했던 것을 산산히 무너뜨렸다.

다연이는 일주일 동안 우리집에 왔다.

나는 한글과 수학을 가르쳐 주었다.

사소한 것에 해맑은 웃음소리를 크게 내어 웃을 때마다 집안은 생기가 돌았다.

 밖에 있는 해조차 덩달아 웃고 지나가는 바람도 같이 웃는 듯했다.

공부하는 것이 싫었던 것일까!

다음에 또 놀러오라는 말을 했지만 오지 않았다.

이번에 병준 아버지께서 대학병원에 입원해야할 딱한 사정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래서 두 남매는  어머니 아버지가 없는 토요일 일요일날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고 신나게 놀았다.

다연이가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다연이 입은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으로 범벅이 되며 맛있게 먹었다.

집안에 있는 여섯마리 햄스터와 돌아가면서 들여다 보고 깔깔 거렸다.

"다연아, 귀엽지. 한번 만져봐. 안물어."

만져 보라고 말해 보았지만 차마 물까봐 겁이나서 그런지 고개만 절래절래 흔들었다.

나는 먹이 주는 법 물 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내가 잠깐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깜짝 놀랄일이 일어나 버렸다.

내가 가장 예뻐하는 햄스터 통은 물바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연아 왜 그랬어?"
"햄스터 물주려고...."
다연이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어서 물을 자꾸자꾸 퍼다가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연이의 사랑이 하마터면 햄스터를 죽음으로 몰아갈 아찔한 사건이었다.

또 시간이 흘러서 다연이는 오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토요일

"엄마. 아가 왔어."
점심밥을 준비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들어오면서 말을 했다.

나는 우리집에서 막내인 딸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알아듣고

"네가 무슨 아기?"
"제가 아니라 다연이 왔어요."

"다연이 혼자왔어?"
"일층에서 서성거리고 있어서 데리고 왔어요."

다연이는 처음으로 혼자 우리집에 왔다.

요즘 어린이 유괴 사건이 발생하는 뉴스를  보고 혼자 걸어온  다연이를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점심밥을 먹이고 난 뒤에 다연이를 집에 데려다 주려는데 설겆이 하는 동안 다연이가 사라져 버렸다.

집에 도착했는지 확인했지만 행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우리 아파트 주변과 다연이가 사는 아파트 주변을

한  시간 동안 헤매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집에 돌아왔다.

한 참후에 집에 전화 했더니 성당에 있다가 금방 왔다고 병준이가 말을 하면서 자신도 안도를 했다.

일요일날 조용히 공부하는데 "삐걱"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다연이가 혼자 다시 찾아왔다.

" 다연이 오늘은 이모랑 같이 놀고 같이 가자. 알았지?"

점심밥을 먹인 뒤에 다연이와 놀이터에 놀러갔다.

" 이모 저기 위에서 오빠랑 나랑 엄마 아빠 떨어졌어요."

" 저 높이에서 떨어지면 사람은 죽는거야."

"아니야 이모 정말 저만큼 높은데서 떨어졌어요.그래서 엄마 아빠가 마네킹이 되었어요."

다연이는 자신의 이야기가 사실인 것처럼 말을 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문득 병준이 엄마가 말한 내용이 불연듯 뇌리를 스쳤다.

우울증이 심해서 자살소동을 몇번 벌였다는....

아이가 아빠의 병으로 인해 앓았을 마음 고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바늘로 콕콕 찌르듯 아팠다.

미끄럼틀 위에서 쿵쾅쿵쾅 뛰어 다니고, 그네에서 펄럭펄럭 날고, 철봉에서 대롱대롱 매달리고,

시소에서 철퍽철퍽 거리며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았다

"이모 저기 꽃 피었어"
"어디 꽃이 없는데."
"저기 빨간꽃"

다연이가 가르키는 쪽을 바라 보았다.

녹색 단풍나무 사이로 작은 빨간 단풍잎 한 장이 햇빛에 더욱 고운 빛깔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꽃이 아니라 단풍잎이라고 말하려다

"정말  빨강 꽃이 예쁘게 피었네"

라고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언젠가 크면 그 나무가 단풍나무라고 알겠지만 지금은 그 아이에게 한 송이 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엄마가 일하러가서 엄마품이 그리운 아이 ....다연이 옆에 엄마 없는 시간만큼 엄마가 되어 주고 싶었다.

다연이는 나의 막내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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