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진호가 학교에서 오더니 엄마의 발을 씻겨준다고 했다.
집에서 간혹 내 등을 씻겨준 적은 있어도 새삼스럽게 발을 씻겨 준다는 말에 순간 당황을 했다.
선생님께서 내 주신 과제가 엄마 발을 씻겨 드리고 자신의 느낀점과 엄마의 느낀점을 써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의무적으로 해야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잠시라도 컴퓨터 앞에 앉아있거나, TV앞에 앉아 있으면 매일 반복되는 잔소리가
“놀 시간 있으면 한자라도 공부해라”라는 말로 닦달을 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내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는 소리
‘ 쓰 잘데 없이 시간 낭비하게 그런 과제물을 내주나!!!’ 라는 사고가 나를 지배했다.
내신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라는 생각 때문에 아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로 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지 않았나 싶다.
물을 대야에 데워가지고 왔다.
발을 담갔더니 아들이 발을 씻겨주기 시작했다.
아들은 발을 씻겨주면서
“엄마는 발이 왜 이렇게 작아요? 그리고 발이 왜 이렇게 갈라져 있어요? 발도 나이가 들어가는가 봐요”
아들 녀석은 처음 내 발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
진호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 한 폄 한 폄 성장해가는 것이 하도 기분이 좋아서
발재기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예전에는 아들과 만든 추억들이 많았었는데...아들과 대화할 시간도 많았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간 뒤로는 내가 더 아들보다 마음이 급해서 아들과 나와의 거리를 멀어지도록
만들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아들을 공부만 하도록 강요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피아노를 치면서 심신의 피로를 푸는 아들에게 한심스럽다고 상처가 되는 말들을 내 뱉었던가!
그러고 보면 내 자신이 아들보다 공부에 대한 강박관념에 더 휩싸여 있으면서
아들을 정신적 피로에 지치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따스한 엄마로서의 수행 보다는 아들에 대해 엄격하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으로 늦게 귀가하고, 서로 얼굴을 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더 마음이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런 엄마를 과연 이해했을까!
내 욕심 때문에 아들에게 상처 주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런 시간을 주면서 아들의 시간을 빼앗는다고 선생님을 원망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족욕을 받는 것이 오히려 미안했다.
아들의 발을 호히려 내가 씻겨 주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따스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고 아들의 마음속에 나도 한 번씩 들어가서
마음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아들아 미안하구나,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엄마의 과욕이 너를 힘들게 했구나. 엄마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은 잊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너와 짧은 족욕 시간이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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