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편을 만난 것은 1990년 12월 초겨울이다
남자친구가 없이 학원 강사로 일하던 중 막내 고모는 나에게 선을 한번 보라고 권하셨다.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회사에 다니는 성실한 청년이라고...
혼기가 꽉찬 나이이긴 하였지만 결혼은 그리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한 가정형편에 대학 졸업하고 혼수비용도 벌지 못했는데 결혼을 생각한다는 것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외로움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친구들은 연애를 해서 애인들과 즐거운 주말을 보내는데 나는 시골에서 시간을 매우고 있다는 것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는 딸이 결혼도 못할까봐 안달이 나셨다.
" 연분이 있어야 결혼을 하는 것이야. 한번만 만나서 커피 한잔하는데 뭐가 그렇게 싫으냐"
초겨울 바람이 무척 쌀쌀하였다. 고모와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한번만 만나기로하고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긴생머리에 뚱뚱한 몸매를 감출 플래어 스커트 차림으로 중앙시장에서 고모와 남자를 소개시켜줄 고모친구를
육교다방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은 2시였는데 다방안은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밖에서 기다렸다.
가뜩이나 나오기 싫은 자리를 억지로 온줄 아는 고모는 슬슬 나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있으니까 키가 땅에 닿을 듯 자그마하고 통통한 중년의 여자가 나오셨다.
그런데 선을 보아야할 상대 남자는3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다.
성질이 나도 꾹 참고 "시간을 잘못 안것 아니예요"라고 질문했지만
속마음은 '무슨 그런사람이 있어. 나오지 않으려면 약속이나하지 말지'하고 불퉁거리고 있었다.
안절 부절 못하시는 중매쟁이 고모친구는 발을 동동 구르시더니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날이 당직이어서 형편상 못나오니 회사로 오라는 전갈을 전했다.
바람 맞은 마냥 자존심도 상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오기가 생겼다. 얼굴이 얼마나 두껍 길래 숙녀를 오라가라하는지 보고 싶은 .....
세사람은 팔복동 버스를 타고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갖은 멋을 부린다고 높은 구두까지 신었는데 발이 욱신거리게 아팠다.
정거장에 도착했는데 멀리서 희미하게 낯선 남자가 걸어왔다 .
시력이 낮은 나는 가까이 와서야 인상착의를 볼 수 있었다.
고모가 말씀하신대로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사내가 깎듯이 인사를 했다.
순간 나의 마음은 작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드는 듯 심장내부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당직이어서 빠져 나갈 수 없었노라고 나오지 못한 이유를 정중히 말하고 커피를 끓여서 탁자위에 놓았다
찻잔을 내려 놓은 그의 손길이 떨려서 찻잔소리가 고요한 회사 사무실안은 후들거리듯 미세한 진동이 있었다.
속으로 웃음이 핑그르르 돌았다.
고모는 중매경험이 있던 노련함으로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고 웃으면서 대답을 해줬다.
고모와 고모친구는 둘이 이야기하라고 하시면서 자리를 뜨셨다.
둘만의 시간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 6시면 퇴근이니까 잠시만 기다렸다가 저녁밥을 먹고 가요"
나는 마다하지 않고 순순히 응했다. 그나 나나 서로 마음이 딱 맞았던 것이다.
레스토랑에가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는 그자리에서 "저는 큰아들이라 부모를 모셔야하는데 괜찮겠어요?"
그 말에 한마디 주저함이 없이 "네" 라고 하였다.
이야기 도중 황당한 것은 고향은 구이 제실 이고 구이중학교를 졸업했다는 것, 거기다 친정어머니 먼 친척????
버스타고 전주시내를 수십번은 오고 갔을법한데 서로는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집안에서는 아무리 성씨가 다르지만 친척이라서 결혼은 안된다고 하셨다.
그는우리 결혼이 타당하다고... 법적절차까지 따져가면서 설득했고 만남 45일만에 1991년 1월 27일에 결혼에 골인했다.
남편은 가끔 우스게 소리로 말을 한다.
"하늘 같은 남편 ,내 나이가 당신보다 많아서 오빠, 엄연한 중학교 선배, 8촌 오빠, 꺄불고 있어~~~~"
나는 대답한다.
"남편은 원래 애인도 되고 친구도 되고 오빠도 되고 학교 선배도 되고~~~~~~"
고지식한 남편때문에 다툴때도 있지만 알콩달콩 사랑싸움하면서 즐겁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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