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

대나무 숲

향기나는 삶 2008. 9. 20. 12:00

나다운 삶/ 임경자

 

내가 태어난 시골집은  집 주변을 울타리처럼  빙둘러 대나무밭이다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잎으로  우리집을 지키는 방패목(防牌木)이 되었다

밤만 되면 산중턱의 가장 끝집이었던 우리집 주변에는 묘들로 가득했고 어렸을적에는

구미호라든지 귀신들이 하얀 소복을 입고 대나무 숲에서 우리집을  엿보고 있는 듯해서

밖을 나가기가 무서웠다.

그런 무서움이 가시는 새벽무렵에 찾아오는 새들의 노래소리는 아침을 깨우는 아름다운 자명종시계였다.

종달새 까치 까마귀 참새 이름모를 새들.....

그 중 참새들은 우리집에 오는 단골 손님이었다.

어머니께서 닭에게 모이를 던져 주면 대나무 숲속을 폴폴 날아다니던 참새들이

어떻게 알고 날아오는지 마당은 한 무리의 참새떼들로 가득했다.

오빠는 참새를 잡을 방법으로 체 덫을 사용했다

참새가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안심하게 먹을 양식을 넣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얼른 끈을 잡아 당겨서 참새를 잡았다.

참새들은 눈치가 빨라서 인기척이나 사소한 소리에도 잽싸게 도망가버려서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봄에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도깨비들이 뿔만 내놓고 땅속에 숨어 있는 것처럼 어린 죽순들이

뾰족뾰족 돋아 나왔다.

입맛이 없을때 그것을 끊어다 된장국에 끓여 먹으면 입맛이 되살아났다 

비가 온뒤에 우후죽순처럼 자라는 대나무를 끊어다 남부시장에 팔면 돈벌이가 되기도 했다.

반면 봄부터 대나무 숲에는 뱀이 허물을 벗고 간 흔적들이 곳곳에서 남아 음산한 분위기가 풍겨왔다

그 곳은 뱀들의 소굴이었다.

소꿉친구들과 사금팔이를 주우려고 들어가면 뱀이 길게 뻗어있거나 또아리를 틀고 살벌한 눈으로

우리들을 바라보는 것은 다반사였기때문이었다.

 

작은 어머니께서 겪은 이야기는 오금을 절이는 사건이었다.

대나무 근처에 옹달샘이 있었다

산 밑에 사는 다섯가구들의 식수원이 되는 옹달샘에서 빨래를 하거나 채소를 씻기도 하였다.

작은 어머니께서 빨래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데 발밑으로 스르르 무엇인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뱀의 차갑고도 냉기어린 기운이었을까!

순간적으로 오싹한 전율이 들었다고 했다.

얼른 건너편으로 뛰어 올라서 그것을 보니 뱀이 입을 실룩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하마터면 뱀에게 물릴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늘상 할아버지는 뱀이 많이 산다고 대나무 숲속에 들어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여름에는 대나무의 키가 하늘을 덮을것처럼 무성하였다.

대나무와 엉킨 칡넝쿨이 뒤엉키고 찔레꽃나무도 친구처럼 무성하게 자랐고

탱자나무와 살구나무 복상나무 감나무까지 서로를 보듬어 안고 자랐다.

할머니는 나에게 꽃댓잎을 따오라고 하셔서 그것을 갖다 드리면 댓잎을 접어서 조리모양으로 만들어

주셨다.

참 작고 앙증맞았다.

그리고 샘가에 가서 작은 것에 물을 담아 입가를 적시면서 웃었다

 

가을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대나무속에서 더욱 소란스럽고 시끄러웠다.

가을에는 대나무 숲속으로 자주 들어갔다.

대나무 사이에 서 있는 알밤나무에서 동글 동글 갈색 밤을 주워오거나

머루나무에서 까맣게 익은 머루를 따먹기 위해서였다

대나무와 바람의 이야기는 내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끝없이 도란거렸다.

대나무 숲속에서 자라는 머루나무에서 까만 머루를 따거나 밤나무 몇 그루가 있어서 밤을 줍기위해서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막대기를 들어야했다

독이 오를대로 오른 뱀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대나무를 칭칭 감으며 줄기를 뻗은 머루나무에 검은 머루는 맛은 잊을 수없었다.

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대나무를 잡아당기면 거기에 매달린 머루들이 저절로 내곁으로 올 수 있어서였다.

그 맛을 서로 빼앗기기 싫어서 머루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작은집과 순덕이네집

우리집의 아이들은 쉬쉬했다가 먼저 발견한 사람이 머루의 주인이 되었다.

저녁내내 톡톡 소리를 내며 떨어진 알밤들이 소복히 쌓인 대나무 잎위서  떼구르르 굴러다녔다

나보다 먼저온 배고픈 산다람쥐에게 빼앗기면 그 녀석들이 먹다 버린 알밤이 뒹글었고 양도 적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서 궂은 날씨에는 어느 누구도 다녀간 흔적이 없어서 바가지 가득하게

알밤을 담을 수 있었다.

알밤은 쪄서 먹거나 시장에 팔고 나머지는 부엌에 파 놓은 독에 담아서 제사에 쓰이는 밤으로써 흙속에

모습을 숨어 버렸다.

 

겨울에 보는 대나무는 차가운 북풍을 몸을 사리지 않고 지켜 주는 의로운 병사같았다.

나는 겨울의 대나무를 좋아했다.

눈이 내려서 소복하게 쌓인 대나무들은  흰 옷을 걸친 천사들이 둥글게 손을 잡고 군무를 추는 것같은

아름다운 자태에 반해 버린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가는 길마다 하얀 소매들이 길 양옆으로 뻗어 있어서 그 속을 걸어가다가 손을 잡아당기면 하얀 눈을

털어버리고 위로 치솟으며 푸른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휘청거렸다.

하얀 꽃가루들이 날리면서 온몸으로 우수수 떨어지면 어찌나 좋았는지.....

눈으로 휘어진 대나무 숲에 들어가 하늘이 보이지 않은 구멍속으로 들어가 그 속을 발로 주변을 꼭꼭 눌러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고 눈 냄새와 대나무 냄새를 맡으며 앉아있으면 행복하고 포근했다.

참새들은 내가 있는지 모르고 옆으로 날아왔다가 얼른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할 찰라 순식간에 도망을 쳤다

 

내가 성장할수록 대나무의 키도 컸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힘든일이 있으면 밤마다 무서움을 잊은 채 다리에 앉아 있었다.

대나무 숲은 무서움의 존재가 아니고  달빛을 반사시키면서 내 슬픔을 같이 해 주는 친구같은 존재가 되었다.

기쁠때나 외로울때나 슬플 때 내마음을 읽고 알아주었던 유일한 친구....

지금도 대나무 숲을 보면 어린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을 새기고 그 옛날이 그리워진다.

옛날보다  대나무들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집 주변은 아직도 빙둘러 있어서 내가 갈 때마다 반겨준다.

대나무는 내 생애에 유년을 같이 지낸 친구로 인생을 같이 가고 있으며 현재도 미래에도 변함없이

늘상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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