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은 내게 있어 휴식과도 같았다.
산 언저리에 자리잡은 양지뜸이 비에 젖어 하루종일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우리집 주변에 빙둘러 서있던 대나무 숲은 덩달아 후드득 후드득~~
비의 마음을 달래듯 같이 울었다.
마당에 서서
골안골짜기에서 하얀 물거품을 한 껏 입에 물고
용트림하듯 흘러내리는 시냇물의 거센 소리가
귓전에서 윙윙거렸다.
그럴때면 대나무 숲에서 뱀들이 슬금 슬금 빗물을 피해
우리집 마당으로 어슬렁 어슬렁거리고
청개구리는 호박잎 뒷편에 붙어 오가는 나에게 꺼먹꺼먹 눈길을 맞추었다.
그리고 싸리문도 없던 우리집 옆에
하루 종일 문앞을 지키던 접시꽃이 빗물 속에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뚝뚝 흘렀다.
빗속에서 놀면 어머니는 옷젖는다고 혼을 내셨지만
빗의 촉감이 너무 좋아서 빗속을 뛰어 다니며
물장구를 쳤다.
비의 맛은 달콤했고 흙탕물이 신발위로 튀어오르면
까칠하고 텁텁한 흙가루가 발가락 사이에서
요리조리 미끌거렸다.
학교가지 않는 날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논에서 피사리를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뱀이 우글거리는 골안밭에 가서 빨간 고추를 따지 않았고
햇볕에 쏘이면서 텃밭의 잡초를 뽑는 불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빨간 땡볕에 검게 그을린 나의 얼굴에
장마는 잠시간의 휴식을 제공한 시간이었다.
지리한 장마는 일에서의 해방을 의미했고
사춘기 소녀의 얼굴에 까맣게 그을림이 잠시 사라질 수
있는 작은 기쁨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