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동화습작

벙어리 할머니

향기나는 삶 2008. 4. 16. 13:09

나에게는 말을 하지 못하시는 벙어리 할머니가 계십니다.

할아버지께서 젊으셨을때 너무 가난하시기 때문에 논 몇마지기 받으시고

할머니와 결혼하셨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저희 할아버지는 키도 훤칠하시고 정말 얼굴도 미남이셨으며

공판장 일을 하셔서 능력이 없는 분도 아니셨는데

왜 연애결혼을 안하셨는지 어린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세상물정을  모르시기 때문에 얼굴에는 항상 평안한 모습을 간직하셨고 

별로 나이도  들지 않게 곱게 늙으셨어요.

하지만 할머니만의 세계가 있을 것이며 혼자 그 안에서 살아가시기 않았을까요?

 아무것도 모르신다고 해서 정말 근심 걱정이 없다고는 여기지 않았답니다.

단지 할머니께서 말씀을 못하시기때문에 내면 깊은 언어를 밖으로 표출 못하고

우리들은  그 마음을 읽어낼 수가 없을 뿐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할머니께서 하고 싶은 언어를 손짓과 웅얼거리시는 말, 얼굴 표정으로 표현하시면 가족들은

그것을 열심히 읽어내야 했어요.

도시에서 살았다면 문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수화라는 언어 수단을  배워서 의사소통도 간편하게할 수 있었을 것예요.

그러면 할머니와 우리들 사이에 놓인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할머니는 아들을 좋아하셨어요.

저희 오빠가 외아들이었는데 엄청 예뻐하셨어요.

손가락으로 "쉬' 쉬...."하시면서 예쁘다고 하시고
여자인 우리들은 "피, 피...."하시면서 안 예쁘다고 하셨어요.

남자는 손가락으로  쉬, 여자는 피, 유일하게 할머니의 여자와 남자 구분하시는 말입니다.

할머니의 말을 잘 이해해 주는 저를 그 나마 여자이지만 예뻐해 주셨어요.

할머니는 주로 집에서 밭일을 많이 하셨어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밭에서 호미를 들고 풀을 뽑으시거나

피곤하시면 방이나 마루에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어요.

할머니는 사탕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후~만" 이는 할머니께서 저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사탕이 먹고 싶을 때는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시면서

손 한개를 펴시고 하나만 먹고 싶다고 말을 하시면  알사탕을 사다가 드렸어요.

고모들이 오셨다가시는 날에는  할머니 호주머니 속에서 풍성하게 든 사탕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제가 심부름을 해드리거나 말을 잘 들으면 아무도 모르게  저만 사탕을 한개씩 꺼내 주셨어요.

할머니의 사탕은  손녀에 대한 사랑이었답니다.

 

어느 따스한 봄날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를 모시고 군산 작은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기로 하셨어요.

여섯살 박이 저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추라고 하면 춤을 잘 추는

우리 집안의 재간둥이 였어요.

 할아버지는 군산가시는 동안 심심하지 않기위해 조잘 조잘 거리는 저를 데리고 가신다고 하셨을 때

하늘을 닿을 것처럼  팔짝팔짝 뛰었어요.

저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군산에 가는 것이랍니다.

할아버지는 또 장항가는 배도 태워 주신다고 했으니 일석이조로 기차도 타고 배를 탈 수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었어요

내 나이 겨우 여섯살에 처음으로 세상 나들이를 가다니 꿈인지 생시인지......

이 여행이 내 기억 속에  첫 경험인 만큼 밤잠을 설칠 수 밖에 없었어요.

저는 손가락으로 할머니께 다섯밤만 자면 저 멀~~리 놀러간다는 시늉을 해서 할머니와 기쁜마음을

나누고 있었어요.

날마다 손가락 다섯개가 하나씩 줄면서 할머니께 가는 날짜를 알려드리면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어요.

엄마는 제가 군산 작은 할아버지댁에 갈 때 입을 옷과 신발, 예쁜 머리끈을 시장에 가서 사다 놓으셨어요.

"할아버지, 군산에 가서 무슨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까?"

" 나리 나리 개나리~~"

할아버지께서는  그때 부터 노래와 춤을 연습시켜 주셨고

할머니는 저보고 "포야 포야"하시면서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셨어요.

 

군산으로 떠나던 날 할머니는 연두빛 고운 한복을 입으시고 할아버지께서는 한복 위에 두루마기를

입으셨어요. 나는 노란색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노란 긴양말을 신었어요.

할아버지 손은 제 차지가 되지요. 할머니는 마음이 들뜨셔서 싱글벙글 해 맑게 웃으셨어요.

아침 부터 파란 하늘에 날아가는 까치 울음소리는 여행을 가는 우리들에게 축하의 노래를 부릅니다.

구불 구불 논두렁에서 돋아난 쑥풀의 향기가 코끝으로 다가옵니다.

할아버지는 제 손을 잡으시고 아랫동네로 내려가십니다.

시외버스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옵니다.

우리보다  더 먼 시골에서 많은 사람을 싣고 달려옵니다.

할머니는 세상 밖으로 자주 나오시지 않기때문에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으셨지요.

그래서 보는 사람도 신기하고 세상밖의 풍경도 신기합니다.

초가집에서 사시는 할머니는 도시의 벽돌 건물도 곱다고 눈짓을 보내십니다.

기차를 타러 전주역에 도착했어요.

나와 할머니의 눈이 휘동그래 집니다.

길다란 상자들이 줄을 지어 가는 기차들을 보고 눈이 커지십니다.

검은 연기를 까맣게 뿜어대며 칙칙폭폭 소리를 요란 스럽게 내며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말소리를 듣지 못하시는 할머니지만 그  큰소리의 진동이 할머니의 귀에까지 전달되는지 깜짝놀라십니다.

할머니는 저렇게 큰 소리는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할머니 귀에 기차소리 만큼 큰 소리로 이야기 하면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지 모르겠어요

길다랗게 뻗은 기차가 얼마만큼의 힘이 있길래 많은 사람을 싣고 달릴 수 있는지 도통 알수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작은 저를 번쩍들어 기차에 태웁니다.

칙칙폭폭 기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달려갑니다.

기차가 흔들리는대로 몸도 요리조리 흔들립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눈가에 싱글벙글 잔주름이 파도처럼 일렁입니다.

작은 할아버지댁은 대야에서  대야에서 지업사를 운영 하시고 집은 따로 있었어요.

5일장이 열리는 날인지 대야는 사람들로 북적 거립니다.

지업사에는 사람들이  장판과 벽지를 사려고 들락달락 시끌벅적 거렸어요.

 

잠시 작은 할아버지께 인사드리고 종종 걸음으로 할아버지 뒤를 따라갑니다.

대야가 집이 아니었는지  거기서 30분 정도 포플러 길가를 따라 걸어갔어요.

넓은 들녘은 아직 농사를 짓지 않아서 작년에 베어 놓은 볏단들이 소복소복 쌓여서

무덤처럼 보였어요.

논사이로 만경강 물줄기가 푸른 하늘을 머금고 뱀의 비늘처럼 꾸물거리며 흘러가고 있었어요.

다시 논 사이로 한 참을 걸어가다가 하늘에서 내려 앉은 참새떼들이 논에 남아있는 이삭을 먹는지

아니면 벌레를 잡아 먹는지 한 무리의 새들이 논에서 폴짝 폴짝 뛰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 동네 시골의 풍경과 다른 점은 우리집은 산 중턱에 있지만 할아버지 댁은

넓은 들녘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는 거예요

작은 할어버지댁은 부잣집이었어요.

점심으로 생일상을 받았는데 상다리가 뿌러질 지경이었어요.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생선들 산해진미가 다 모여서 입에서 침이 꼴깍꼴깍 넘어갑니다.

작은 할아버지네 식구들은 저희 할아버지께 큰절을 올리시며 예의를 표하십니다.

입에서 군침이 돌지만 어린 저도 할아버지께서 알려 주신대로 이마에 두손을 대고 다소곳하게 큰절을 올립니다.

밥 먹기 전에 준비해 왔던 ~개나리~노래와 춤을 곁들여서 손님들의 박수와 칭찬을 받았지요

어쩌다 생일날만 되면 먹는 음식들을 맛있게 먹은 뒤에 작은 할아버지는 모처럼 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저를

장항으로 구경시켜주신다고 군산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아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입니다.

칙칙폭폭 처음 기차를 탔고 또 처음 배를 타잖아요.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군산으로 향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면 비릿한 냄새가 날라오고 갈매기도 끼룩끼룩 파도도 철썩철썩

그 소리가 바다가 내는 소리고 바다가 내는 냄새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의 입은 벙긋벙긋 거리십니다.

한복이 물에 젖을까 노심초사 사뿐히 들고 다니시는 것을 잊지 않으세요.

서해바다가 왜이렇게 노란것일까요!

서해바다는 물인데 왜이렇게 똥물일까요!
저는 바다색깔은 우리가 먹는 물과 달라서 이런 색깔을 낸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마냥좋기만 합니다.

수많은 배들이 뱃고동을 울리면서 통통거리고 사방으로 달려가거든요.

이곳은 저에게는 미지의 세계이며 동화나라에 온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저는 지금 꿈을 꾸면서 기차나라와 배나라에 놀러온 아이입니다.

 

장항에 갈 통통배가 통통통 거리며 부두에 도착했어요.

파도에 배가 파도따라 흔들거리니까 바닷속으로 풍덩 빠질까 겁이 납니다.

할아버지는 배안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하십니다.

할머니와 저는 바다를 달리며 손뼉을 치면서 웃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면 또하나의 바다가 있고 진짜 바다를 쳐다보면 출렁거리는 바다가 있다니

바다에는 바다가 둘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할머니와 저만 알고 있는 비밀이거든요.

다른때는 말을 안하셔도 오늘은 할머니께서  말을 하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할머니께서 느끼는 바다를 알고 싶었거든요.

제가 느끼는 바다는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바다는 사람처럼 말을 할때마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사람처럼 노래를 할때마다

철썩철썩 노래하고 사람처럼 움직일 때마다 드넓은 파도가 덩실덩실 춤을 추잖아요

장항에서 작은 할아버지께서 맛있는 사탕을 사주셔서 입에 물고 바다를 바라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의 세상 나들이는 내가 부른 ~~개나리~~~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의 내용처럼 봄빛이

맑은 봄날 여행을 세상구경을 하고 온 것이다.

할머니와 나의 가슴속에 처음으로 세상을 향해 봄나비가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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