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람이 잠을 깨어 찢어진 문풍지속으로 들어왔다.
집을 빙둘러 싼 대나무 숲에서 아침부터 참새떼들이 조잘조잘
거리면서 잠을 자고 있는 순실이의 귀를 간지럽혔다.
눈은 비비면서도 열 발가락은 꼼지락 아랫목의 따스한 온기를 향해 내려갔다.
"순실아, 밥 먹고 학교 가야제"
가마솥의 뚜껑을 여는 쇠붙이 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퍼졌고
구수한 밥 냄새가 스멀스멀 코끝으로 밀려왔다.
순실이는 샘가로 냅다 달렸다.
샘속으로 파란하늘이 출렁출렁 물따라 요리조리 춤을 추었다
샘위로 휘어진 대나무잎들은 톡톡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어제 저녁 밤새 비가 내렸다고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한바가지 두바가지~~~"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양은 세수 대야에 물을 퍼놓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오늘은 뭐 즐거운일 없을까!'
하루를 보낼 즐거운 계획을 세웠다
' 옳지. 오늘은 거기가자'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얼굴만 씻고 밥상에 앉았다
밥상위에 있는 김치에 냉이를 넣어 끓인 냉이국과 돈나물무침이
봄의 발걸음을 느끼게 하였다.
"엄마 빨리 머리 따"
쏜살같이 밥을 먹은 순실이는 식사를 하고 계시는 엄마를 다그쳤다.
허리선까지 길게 자란 머리를 아침마다 따는 일은 아직 나이 어린 아이에게 서툴기만 해서
엄마의 손을 빌리는 것이다.
오늘따라 긴 머리가 달갑지 않았다.
줄다람쥐모양 쪼르르 계단식 논둑 길을 달려 갈때마다 향긋한 풀 내음새들도 같이 달렸다.
"저 쪽 산 너머에 뭐가 있을까"
진달래 꽃망울이 한폭의 병풍을 만든 앞산은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보는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어쩌다 집으로 간간히 들려 오던 소리를 찾아가고 싶은 것이다.
징소리 장구 괭과리소리.....
산너머에서 가물가물하게 들려오던소리...
"엄마 이소리는 무슨 소리여"
"누가 굿하는갑다"
"어디서 하는디"
"저 산 너머"
엄마는 손가락으로 앞산을 가르켰다.
"굿 구경하러 가면 안돼"
"안돼야, 귀신 붙는디여. 거기에 귀신이 살어"
귀신 이야기를 하면 너무 무서웠다.
순실이가 사는 집 주변에는 소나무 사이로 바가지 엎어논 모양같은 묘지들이 보이고,
또 대나무 뒤편으로 묘지들이 너무 많아서 밤이면 귀신들이 산다고 믿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밤에는 귀신들이 집근처를 어슬렁거리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했다.
처녀귀신 총각귀신 할아버지 귀신 할머니귀신들이 내려와서 사람들을 홀린다고 확신했다.
"엄마는 귀신이 있다고 믿어"
" 그럼, 있제. 귀신 붙은 사람이 미친사람이여"
그 말만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굿 소리가 들려 오는 날이면 밤에 밖을 나가지 않고 방안에 있으려고 했다.
학교 가는동안 산지당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가 !
교실에 도착하자 같이 갈 친구들을 찾았다
"산지당 갈사람없냐"
" 너 정신있냐, 거기에 우리 엄마가 그러는디 귀신이 산데"
미순이가 먼저 대답했다.
가까운 동네 친구들 몇명에게 물어보았지만 무서움에 등을 돌렸다.
수업시간내내 산지당 생각으로 공부가 집중이 되지 않았다.
' 꼭 산지당에 가서 귀신이 살고 있는지 보아야혀"
오전 수업이 금방 끝났다.
비가 갠 뒤의 하늘에 햇님은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내며 새싹을 키우고 있었다.
혼자는 절대로 갈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터벅터벅 같이 논두렁에 풀을 뜯으면서 걸었다.
산 자락 논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논두렁에서 두엄을 내고 계셨다.
겨울내내 소 외양간 두엄을 쌓아 놓으시더니 못자리 하기전에 논에 두엄을 논바닥에 깔아 놓는 중이다.
산지당 생각으로 아버지를 그냥 지나칠뻔했다.
"야, 학교 다녀왔단 인사도 안하냐"
아버지의 말씀이 있고 난뒤에 그를 알아챘다.
집에 도착했다.
순미가 텅빈 집을 공기놀이 하면서 지키고 있었다.
이제 겨우 6살 밖에 먹지 않은 순미는 바가지 머리에 자기가 입다가 물려준 주황색 바지, 빨강색 스웨터를 입고 혼자서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배에서 꼬르륵 꼬르륵 ~~~~
"순미야 배고프지, 우리 저기 산너머에 가자. 산지당가면 맛있는 것이 많대. 떡도 있고.. 부침개도 있고..사탕도 있고..언니랑 같이 한번 가보자"
철부지 동생은 먹을 것이 많다는 언니의 말을 곧이곧대고 믿는 어린 동생일 뿐이었다.
집에는 밥 챙겨 줄 사람은 없고 동생도 배가 고픈터라 순실이와 같이 산지당에 가기로 결정했다.
둘은 집을 나섰다.
논두렁 둔턱에는 여리디 여린 쑥의 잎이 고개를 서로 밀어내느라 안깐힘을 쓰고 있었다.
바위틈을 타고 줄타기를 하는 돈나물이 바위를 덮을 기세로 올라가고 있었다.
시냇가 징검 다리를 건넜다.
아직도 물기운이 차가워서 시냇가를 건너는 바지 가랑이 사이로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인기척을 알아챈 개구리들이 돌틈에 몸을 숨겼다.
멀리만 느껴지던 앞산이 코앞에 막아섰다.
무서움이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조용한 산골에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집에서 보면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은 야산이지만 막상 산 앞에 섰을때 커다란 거인이었다.
산지당 가는 길은 굿하려고 갔던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작은 길이 되어있었다.
순실이가 앞서서 길가에 드리워진 찔레꽃 가시나 잔나무들을 손으로 끊어서 동생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
숨이 목까지 차 오를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진달래꽃잎을 따면서 쉬었다.
진달래 꽃의 색깔도 다 똑 같지는 않았다.
연분홍 진분홍....빛의 방향에 따라 모양도 가지가지였다.
소나무 숲길로 들어섰다.
나무숲 사이로 묘지가 보였다.
둘은 손을 꼭 잡았다.
" 조금만 가면 돼..."
산의 정상에 올라왔다.
파아란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산정상에서 본 순실이네 집이 개미집처럼 작았다.
산지당은 꼭대기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은 굿이 없는 모양이었다.
순실이가 들었던 소리가 들리지 않고 고요한 정적만이 흘러내렸다.
주변에는 대나무 가지에 울긋 불긋 깃대들이 솟아 있었다.
"언니 무서워. 집에 돌아가자. 귀신 나올것 같아."
순실이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용기 백배내어 온 길이기에 돌아갈 수 없었다.
살금 살금 산지당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사람이 살지 않고 귀신이 살까'
아무도 없는 텅빈집이었다.
동생은 무서움에 배고픔도 사라졌다고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방문안을 들여다 본 둘은 깜짝 놀랐다.
안에는 무서운 귀신들 그림들이 울긋 불긋 그려져 있었고 이상한 옷들이 걸려져있었다
제단에는 과일과 음식이 차려져있었다.
"거기 누구냐"
순실이는 집안에 그려진 그림속에서 말을 하는 줄 알고 꽁꽁 얼어버렸다.
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머리가 희끗하면서 쪽을 지고 한쪽눈이 약간 이상한 할머니가 서 계셨던 것이다.
" 아~~아니요. 여기 구경왔어요"
" 어디 사는디"
" 저 산뒤에요"
손가락으로 산을 가르켰다.
" 너 이름이 뭐여. 거기 쪼르르 있는데 몇번째 집 살어"
" 예 이순실이예요. 끝 집에 살아요."
" 끝집이라면 그집이구먼."
입으로 알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셨다.
할머니는 순실이네 집에대해서 꿰뚫어 보고 계셨다.
'귀신이 씌어서 다 아는 것일까'
순실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리 와라. 여기 왔으니까. 밥 먹고 가라."
할머니가 떡과 과자 과일이 차려진 작은 밥상을 차려다 주셨다.
귀신 씌운 무서운 할머니라고 생각했던 공포가 사라졌다.
그제서야 배고픔이 밀려왔다.
순실이와 동생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적이 없었다.
무당할머니가 귀신이 아니라 자상한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 한번씩 놀러오너라"
무당할머니는 우리가 떠나는 뒤를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에 미소를 보였다.
내일 친구들에게 무당할머니 이야기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즐거웠다.
오는 길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봄바람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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