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때 유난히 뽀오얀 피부, 잘 차려입은 옷 매무새, 시골스럽지 않은
분위기, 흔히 말하는 귀공자 모습......
시골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면서 논일 밭일 작은 일거리가 있으면 잔심부름을 하며
흙먼지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시골 일꾼처럼 일해야 했던 시절에는 아이들의 몰골은
흙먼지 투성이에 얼굴은 저절로 햇빛에 그을려 흰피부조차 까무잡잡했다.
하얀 피부는 도시의 아이들 소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골일이라고는 한 번도 안한 듯한 그 아이의 백지장 같은 하얀 얼굴을 본 순간
까만 하늘을 가로지르며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내 가슴속으로 떨어져 박혔던 것이다.
학교 가는 것이 즐거운 일이란 것도 그제야 알았다.
수업시간에 공부를 집중하지 못하고 뒤를 돌아 보거나 괜히 떨어진 연필을 주우려고 했던
헛튼 짓을 하는 것도 그때 배웠다.
땅꼬마 같이 키작은 나는 뒤를 돌아 보는 일이 잦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에게 심술궂은 장난도 걸어보는 유치함도 그때야 알게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은 마냥 마음이 즐거웠다.
내가 학교앞 도랑물을 먼저 건너 그 아이가 올때를 기다리다가
" 환타. 환타가 건너온데요"
그 당시에 음료수 이름이 환타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과 접목을 시켜서 그렇게 별명을 지은 것이다.
" 뭐여. 너 죽을래. 잡히면 죽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분명 시골티가 나는 아이였다.
그 녀석에게 잡혀서 맞기도 했고 도랑물에 던진 물방울에 맞아서 옷이 젖기도 했지만
나에 대한 관심이라고 위로했다
그 아이는 우리동네 옆 청송골에 살았다.
청송골은 시외버스가 지나가는 길목이거니와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분기점에 자리 잡은 마을이었다.
청송골은 도시로 가는 길 옆에 있어서 도시의 모습을 가져다 놓았다.
도시에 한번도 나가보기 전까지 청송골이 도시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우리들이 군것질할 구멍가게가 있었고, 양조장이 있었으며 막걸리를 파는 주막집,떡방앗간이 있었다.
농협공판장에서 쌀공판이 열리는 날에는 어디서 왔는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려서 활기를 찾았다.
우리 동네가 조용하고 시골이라면 다리 하나를 두고 그 곳에 가면 활기가 넘치고
사람사는 듯한 냄새가 풍겨왔다.
우리 동네에서 청송골로 막 나가면 커다란 양조장이 보였는데 거기에는 어여쁜 화영이가 살았다.
그 아이를 보기 위해 화영이네집에 놀러가기를 좋아했다.
화영이네 집에서 몇 집을 띄어 그 아이집이 있었기때문이었다.
화영이네 집은 부자였다.
그 당시에 텔레비젼이 있는 집은 아마 화영이네 집이 제일 먼저이지 않았을까!
먹을 것도 많았다.
나의 간식거리가 계절마다 밭에서 나오는 채소들, 고구마 감자, 오이 가지..였었다면 사탕이나 과자들이
그녀의 간식이었다.
양조장에 사는 집이라서 일꾼들이 북적거렸고 술익는 냄새가 온마을을 뒤덮었다.
화영이의 윤택한 삶은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의 집에 가서 노는 재미보다 화영이와 밖에서 놀다보면 그 아이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더 설레는 일이었다.
어느날 초여름의 일이었다.
시골에서는 모내기철이라서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줄모를 심어야하는 우리집은 못줄 잡아줄 일손이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내가 못줄 잡을 만큼 컸다고 생각하셨는지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오라고 하셨다.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이 논일이었지만 논에서 일하고 나면 온몸이 진흙 투성이가 되기때문에
그런 모습을 누가 보는 것이 싫었다.
학교 다니기 전에는 철이 없어 부끄러움도 없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며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였다.
그러나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차츰 이성의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부터 남학생이라도 만나면 고개를 푹 숙이게 만들었다. 부모님께서는 여자 할일과 남자 할일을 별로 구분 짓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는 막걸리를 사오라고 하셨다.
논물에 흙 범벅이 된 옷, 얼굴, 머리카락들은 내 발걸음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얼굴만 겨우 씻고 술주전자를 들고 화영이네 집으로 술을 사러가야했다.
학교가 파한 오후라서 꼭 누구하고 마주칠 것 만 같아서 안절 부절 못했다.
' 그 녀석을 만나면 어쩌지'
전전긍긍하면서 바지가랑이에 묻은 흙들을 털기 시작하였다.
물기에 젖은 흙들이 털어질리 없었지만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서 털고 또 털었다.
하루만 햇볕에 그을려도 그나마 타고난 까만 피부가 더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화영이네 집으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몰랐다.
슬리퍼에 터덜 터덜 비포장도로를 걸을때마다 땅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바람결을 타고 입속으로 들어왔다.
모내기를 내는 바쁜 시기라 동네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화영이네 집에서 술 두되를 받았다.
화영이는 집안에서 노는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데....
오던 길을 걸어 다시 논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외버스 한대가 먼지를 날리며 멀어져갔다.
희뿌연 먼지가 내 앞을 가려서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시외버스가 지나가기 전까지 분명히 사람이 없었는데 하얀 연기가 사라지는 순간에 그 아이가 나타나 있었다.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발은 순간 꽁꽁 얼어붙는 듯 고정되어버렸다.
하마터면 술주전자를 엎지를 뻔했다.
"야 술받아가지고 논에 가냐"
"으~~응"
"무겁겠다. 같이 들어줄까?
"아~~니 괜찮아 어디 갔다 오냐"
"학교에서 축구하다 와"
"그래!!!!
그 아이와 잠시 말을 건네면서 심장 고동소리가 그 아이에게 들릴 것 같이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술주전자가 무겁긴 무거웠다.
짓궂게 장난만 치고 단 둘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꿈만 같았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면서 놀았는지 그 아이의 하얀 피부도 어느새 햇빛에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 열심히 일해라"
그 아이는 나에게 격려 어린 말투를 남기고 집으로 향해갔다.
나는 논으로 오면서 정말 행복했다.
옷에 묻은 진흙투성이도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그 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만으로 고단했던 모내기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학교다니는 동안 내 심장에 별이 되었던 아이, 내 첫사랑에 아름다운 별을 심어준 아이, 그 아이에게서 사랑이란 단어를 얻었다.
'나의동화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썽쟁이 햄돌이의 비밀 (0) | 2008.07.03 |
---|---|
벙어리 할머니 (0) | 2008.04.16 |
산지당 (0) | 2008.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