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서 남편에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오늘의 내 운명을 바꿨다.
"오늘 못자리하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
시집오기 전까지 신물나게 농사일을 도왔던 나는 일하기가 싫어서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혼자 일을하면 재미없으니까 가자"
웬만하면 전화를 안하시는 분이시고 다리가 편찮으신 두분이 일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시댁에 갔다.
두집이 품앗이해서 못자리를 하기로 약속하신 사람들이 못하신다고 한 모양이었다.
차를 부리나케 몰아 시골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은뒤 들판으로 나갔다.
흐릿한 날씨에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이 어찌나 춥던지 몸이 으슬으슬 거렸다.
시동생 점퍼를 안걸치고 왔더라면 추위를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모판에 흙을 담아 씨를 뿌리고 뿌린 씨위에 흙을 덮어서 마지막으로
물을 적당히 담은 논에 모판을 넉줄로 줄을 마춰 넣은 다음 부직포로 덮는 작업이었다.
시집오기전 친정 아버지께서 손수 흙을 퍼다가 체로 쳐서 흙을 담던 것을
지금은 포대에 담은 흙으로 모판에 담아 일은 수월했다.
흙도 예전에 비하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안에 톱밥같은 것이 토양과 섞인 것 같았다
처음에 했던 모판에 흙을 담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모판을 네개씩들고 진흙논에 들어가서 균형 잡고 발을 옮기는 일이
더 어렵고 힘들었다.
도시에서 쉬운 일만 하다가 허리를 써야 하는 일이라서 모판이 옮겨진 후에 오는
허리 통증이 엄청났다.
제대로 꼿꼿하게 허리를 펼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연세가 있으신 친정 시댁 부모님들은 고된 노동을 하면서 흙과
시간을 보내시는데 얼마나 힘들까!
젊은 사람이 떠난 농촌, 일을 서로 도와줄 사람이라야 노령의 어르신들이
감당해야 할 일의 양은 막노동이었다.
간간이 뿌리는 비와 들판을 휘돌아 치는 바람은 냉혹한 농촌의 현실을
고스란히 말해 주고 있는 듯했다.
잠깐의 휴식속에서 먹은 새참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하고 맛있었다.
돼지 고기국과 볶은 미역줄기, 김치,머우무침...
일을 하고난 뒤에 먹는 음식과 휴식은 꿀맛이 따로 없었다.
새참을 먹은 뒤에는 추위가 덜했다.
허리가 아파도 내색할 수가 없었다.
남은 흙들을 다른 비료포대에 담아 논에 정리해 두고 리어카를 끌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웃었다.
누가 뭐래도 농꾼의 모습이었다.
논두렁에서 묻어진 진흙이 온몸의 상방 군데에 흔적이 남았고 찬바람에 날라온
흙먼지가 머리에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러고 집에갈래?"
시어머니는 그것이 걱정이셨나 보다.
" 어디 들릴데도 없고 곧장 집으로 가는데요.뭐"
"너희들이 도와 주어서 덜 힘들었다"
오늘 쉬지도 못하고 일해준 우리들에게 못내 미안해 하셨다.
" 우리가 일을 해 줌으로써 몸은 고되지만 몸이 성치 않은 아버지가 쉴 수 있어서 좋다"
제일 힘들게 일한 남편의 말이었다.
우리 내외가 오지 않았다면 시어머님은 저녁내내 끙끙거리고 앓았을 것이다.
내가 리어커를 끌고 가다가 남편이 자기가 끌고 간다기에 넘겨 주었다.
남편은 끌고 나는 뒤에서 밀고 우리 부부는 시골의 농부가 되어
들꽃이 피어있는 논두렁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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