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 가슴속에 고즈넉하게 내어 준
들판의 벼밑둥은
줄지어 칼날 선 깃발을 꽂아 놓고
만추의 쓸쓸함만 펄럭입니다.
평생 당신의 땀이 절인 논에서
한 해 한 해
흙냄새가 고슬고슬 익어갈 때마다
당신의 청춘의 나이테가 늘어갔습니다.
뻐끔 거리며 내 놓는 햇살의 눈부심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거늘
당신의 휘어진 허리와
얼굴의 검버섯은 날로 다른 모양입니다.
아버지
당신 등위에 얹어 놓았던 지게에 철부지가 앉아
들판 걸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 때는 종달새 소리가 절로 귀에 앉아 춤을 추었고
찔레꽃 향기가 코끝에서 웃었습니다.
저를 태운 소달구지가 달그랑 달그랑 거리며
흙 먼지 속의 당신 검은 눈썹위로 하얀 분칠를 해대면
마냥 좋아서 손바닥을 쳤습니다.
길옆에 포플러 잎들이 내 곁에서 기쁨의 소리를 질렀고
시냇물 소리도 즐거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 들판은 당신의 모습입니다.
뉘엇 뉘엇 저물어가는 들판위에
지난해에 새로운 아스팔트 길이 나 있습니다.
당신 목숨처럼 아껴왔던 땅위에 새롭게 뻗은 길이 눈부시지만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옛길 위에 변함없이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