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

아버지

향기나는 삶 2008. 11. 16. 01:28



 

아버지

당신 가슴속에 고즈넉하게 내어 준 

들판의 벼밑둥은

줄지어 칼날 선 깃발을 꽂아 놓고

만추의 쓸쓸함만 펄럭입니다.

 

평생 당신의 땀이 절인 논에서

한 해 한 해

흙냄새가 고슬고슬 익어갈 때마다

당신의 청춘의 나이테가 늘어갔습니다.

 

뻐끔 거리며 내 놓는 햇살의 눈부심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이거늘

당신의 휘어진 허리와

얼굴의 검버섯은 날로 다른 모양입니다.

 

아버지

당신 등위에 얹어 놓았던 지게에 철부지가  앉아

들판 걸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 때는 종달새 소리가 절로 귀에 앉아 춤을 추었고

찔레꽃 향기가 코끝에서 웃었습니다.

 

저를 태운 소달구지가 달그랑 달그랑 거리며

흙 먼지 속의 당신 검은 눈썹위로 하얀 분칠를 해대면 

마냥 좋아서 손바닥을 쳤습니다.

길옆에 포플러 잎들이 내 곁에서 기쁨의 소리를 질렀고

시냇물 소리도 즐거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저 들판은 당신의 모습입니다.

뉘엇 뉘엇 저물어가는 들판위에

지난해에 새로운 아스팔트 길이 나 있습니다.

당신 목숨처럼 아껴왔던 땅위에 새롭게 뻗은 길이 눈부시지만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옛길 위에 변함없이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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