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

버스를 타고

향기나는 삶 2007. 11. 6. 02:45
 버스를 타고

딸아이와의 한 바탕 감정싸움을 하고 마음이 울적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이...친구가 그렇게 좋다고...

딸아이도 자기 자신을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할지 모른다.

저녁식사를 대충해 놓고 화장품을 사러 전주역으로 갈 차비를 했다.

남편에게 차를 달라고 했다가  버스를 타고 가기로 방향을 바꿨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감정을 추스리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종교가 뭐가 필요해. 나의 기도도 들어주지도 않는  하잘것 없는 신앙.. '

절대자에게 항변하면서도 내 손에는 묵주기도를 들고 참회를 하듯 걸어가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전주역 버스에 올라탔다.

어둠이 도시를 어슬렁 어슬렁 기웃거리고 가로등은 어둠을 빛으로 감싸안으려고 덤벼들었다.

가로수 밑에는 소복히 쌓은 낙엽이 가로등불 아래에서도 고왔다.

 내가 탄 시내버스는 송천동에서 중앙시장을 거쳐 아중리 인후동으로 .....전주역 무려 몇동을 지나쳤는지....

내가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낯선 거리로만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간간이 한번 정도 지나쳤던 거리를 마주할 때는 불안감이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한 번도 지나지 않은 거리를 볼때  전주에 살면서 이런 곳이 다 있었나 신비로움이 느껴졌다.

'좁고도 넓은 곳이 전주였구나 '

차안은 정거장을 지나갈 때마다 한 두 명씩 자리를 채우고  몇 명은 내리면서 여전히 나와 기사아저씨 그리고 손님을 더해봐야 3~4명이 유지 되고 있었다.

시끌벅적 떠드는 사람이 없고 차에서 나오는 음악도 없이 조용해서 화기로 흥분되었던 기분이 침식되어 가고 있었다.

택시를 타면 10분도 안될 거리지만 무려 40분정도를 차안에서  거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때 같으면 시간이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구르겠지만 오늘 만큼은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으로 모든 것들이 멈춰지길 바라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 번씩 종점까지 갔다 온다던 친구의 말이 어렴풋하게 귀에 익었다.

무작정 목적없이 차를 타고 갔던 그녀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녀와는 달리 화장품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탔던 버스이지만 밤거리를 구경하며 갔던 길목들이 저녁 내내 머리속에서 아른거렸다.

내 마음속에  딸아이에 대한 미안함도 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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